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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티나는 몸뻬,유영준

 '몸뻬'는 일본에서 들어온, 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바지의 하나를 일컫는 말이다.  일바지는 흔히 몸뻬(바지)라고도 부르는데, 여성들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바지이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귀티나는 몸뻬

 '몸뻬'는 일본에서 들어온, 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바지의 하나를 일컫는 말이다.  일바지는 흔히 몸뻬(바지)라고도 부르는데, 여성들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바지이다. 이는 'もんぺmonpe'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발악을 하던 일제 말기에 일본은 국민복 착용과 몸뻬 착용을 강요했다. 이때부터 전국에 보급된 몸뻬와 카키색 국민복은 마치 모든 국민의 필수복처럼 되어버렸다. 우리말 순화집에서 권장하는 이름은 일바지 또는 왜바지이다. 여사님은 그 몸뻬 하나로 젊은 날을 버텼다. 무심한 남편은 으레 그려려니 했다. 


 여사님은 가계부를 안썼다. 속 없는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그 흔하디 흔한 가게부 하나 안쓰냐고. 여사님은 그랬다. 가계부를 적으려면 손에 쥐고 있는 돈이 몇푼이라도 있어야 적고 말고 하는데 당신 월급 날 가져온 월급은 그날로 다 나가고 빈 봉투 밖에 없는데 무슨 가계부냐고 핀찬이다. 전에는 월급을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주었다. 회사 정문에서 밀린 외상 술값 받으려고 대기 중이 술집 아줌마들을 용케 빼돌리고 집으로 와서 얇은 봉투지만 내 놓으며 애썼다는 말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었다. 월급이 은행을 거쳐 바로 집사람 손으로 들어 가지 않고 내 손을 잠시나마라도 거쳐 갔던 좋은 시절이 있었다. 대개는 핀찬으로 끝나지만. 하기야 부모님, 시동생 네 명, 조카 한 명, 우리 애들 둘 그리고 우리 내외 까지 하면 합이 열한 명이 사는 집에서 밀린 쌀, 보리 값, 연탄 값, 구멍 가게 외상 값, 시동생들 등록금과 용돈 등등 항상 돈이 모라랐는데 가계부 타령을 했으니 나도 모자라기는 많이 모자랐었던 같다. 그래서 여사님은 몸뻬로 버텼던 것이다. 여사님은 지금도 말한다. 나는 가난한 것이 두렵지 않다고. ‘시장에 가지 않으면 되니까’ 라고.

 

 지금 나와 한 이불을 쓰는 여사님은 원래 나의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의 딸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가 있던 도시에 선생님이 전근을 오셨다는 말을 듣고 고학생인 나는 혹시 밥이나 한번 얻어 먹으려고 찾아 갔었는데 ‘오빠! 이 영어 단어가 무슨 뜻이야?’ 하고 묻던 아이었다. 


 월남 갔다 귀국하여 선생님을 찾아  뵈러 갔었는데, 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이 ‘오빠 욌어!’ 하고 문을 활짝 열던 그 학생이 지금 나에게 온갖 잔소리를 해 대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마나님의 옛 모습이다. 그 날 이상하게 집에 빨리 오고 싶어 학교에서 선생님께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일찍 오니 내 군화가 있더란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무슨 운명인가 봐’ 하고 중얼댄다. 난 속으로 웃곤 한다. 운명은 무슨 운명.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살아 준 여사님 고맙소.


 그 여학생은 참으로 나를 좋아 했다. 그렇게 해서 세월이 흘러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지금의 장모님은 엄청 반대했단다. 가난한 집의 장남, 체격도 왜소하여 볼품도 없었고 그깟 학교 공부 좀 잘한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하셨단다. 학교 선생님 사모님은 학부모였던 우리 집의 사정을 그런대로 알고 계셨었다. 돌아가신 장인 어른은 공부를 곧 잘하는 내가 그리 싫지는 않았었노라고 후에 말씀하셨다. 우리 집사람은 막무가내였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크게 씌었던 것이다. 나중에 나에게 고백한 말인데 언제 나와의 대화에서 회사 사장에 관한 얘기가 있었는데 내가 그랬단다. ‘그깟 사장 아무것도 아냐’ 했단다. 그 때 여사님은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라고 했었던 것 같다. 사장을 그깟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전도 유망한 젊은 대학생으로 각인이 되었었나 보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었단다. 참으로 맹했던 것인지 앞을 내다 본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우리 집사람은 참으로 귀티가 난다. 남들이 그런다. 나도 동감이다. 예전에 우리 삶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집사람은 평생 고생하지 않고 살아 온 여자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젊어서 고생하며 살았던 얘기를 하면 의아해 한다고 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덕이다. 
 나는 지금도 여사님을 볼 때 마다 기회가 있는 대로 ‘참 예쁘다’. ‘참 잘생겼다’. ‘귀티나네요’ 라고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콩깍지는 나에게도 씌운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우리 여사님은 ‘무슨?’ 하면서도 싫지 않은 내색이다. 같은 말을 계속해도 계속 좋아 한다. 질릴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앞으로 50년만 더 계속해야지.


 나는 믿는다. 사람이고 동식물이고 심지어 돌덩어리도 잘 생겼다. 아름답다. 착하네 하면 그렇게 되고 야 바보야. 너는 왜 그것 밖에 못하냐. 참으로 못났다 하면 그렇게 된다는 항간의 얘기를 믿는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믿는다. 확실히 옛날 내가 처음 여자로 느낌을 받았을 때 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지금이 훨씬 아름답다. 더 귀티가 난다. 아름답고 귀티가 나는 여사님과 사는 나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다 내덕이다. 

 

 여사님은 독종이다. 한 번 하면 끝장을 본다. 아마 골프 연습장이나 헬스장은 우리 여사님같은 고객만 받으면 당장 망할 것이다. 매일 가니 말이다. 하루에 두 번도 간단다. 친구들 중에 드디어 제일 먼저 싱글이 되었다. S호텔에서 비싼 요리와 함께 장미꽃 500송이와 함께 몰래 준비한 싱글패를 주니 감동 먹었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 그 후 한 달은 내가 편했다. 미국에 있는 우리 아들은 카톡으로 말했다. 아빠 엄마에게 뭐 잘못한 것 있어? 예는.
 작년에 천안 흥타령 대회,J 대학 아마츄어 전통무용 발표대회, 국립극장 아마츄어 발표 대회에서 그 어렵다는 태평무 세 가지를 거의 동시에 소화해 내었다. 어느 전국 대회에서는 대상을 거뭐쥐기도 했다. 참으로 독한 여자다. 나는 이런 여자가 좋다. 같이 안 놀아 준다고 투정을 덜 하니까.

 

 우리 집사람은 길거리를 그냥 지나지 못한다. 노점상하는 할머니나 지하철에서 깐 더덕 파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노점상 하시던 돌아 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러는지 몰라도 꼭 물건을 팔아 준다. 딸이 그랬단다. 자기들이 잘 사는 것은 어머니 가 평소에 주위에 베푼 것을 자기들이 받아 그렇다고. 다 어머니 덕분이라고. 칠남매의 맏며느리에 팔남매의 장녀답다.


 요즈음은 미국에서 아들이 보내주는 손주 카톡 사진 보는 것이 낙이다. 외손주, 외손녀가 있는데 좀 다르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여사님이 무섭다. 여사님의 육감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나는 강의할 때 연관이 없더라도 기회만 있으면 절대 부인을 속이려 들지 말라고 한다. 여자들에게는 남자에게 없는 육감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있다. 여자 모르게 바람을 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는 가능하단다. 첫번 째는 백치 아다다 같은 여자와 사는 경우이고 둘 째는 이미 여자도 바람을 먼저 피우고 있어서 관심이 없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여자가 좋아서가 아니고 무서워서이다.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하면 세상 그렇게 편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머리가 좋다. 이 어려운 것을 일찍 터득하고 평생 실천하고 있으니. 
 나는 모계(母系)중심주의자다. 보라! 지금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는 말은 예전에 여성을 억누르고 남성을 치켜 세우는 봉건 사상을 가르키는 말이었었는데 이제는 이 말을 달리 해석하여야 한다. 여성을 적당히 눌러야 남성들이 숨이라도 쉴 수가 있겠노라. 남성에게 강제 할당 혜택이라도 주어야 한다.

 

남녀 공학인 학교에 가 보라. 남학생들 정말 불쌍하다. 반에서 큰 목소리 내는 학생들은 모두 여학생들이다. ‘야 조용히 해!’ ‘너 까불어!’ 틀림없이 여학생이다. 아! 하나님 어찌해야 하나요“ 창세기에 있는 하나님 말씀, ‘여자에게는 잉태의 고통을!’, ‘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주셨는데, 이제 여성들이 노동의 고통을 감내한다고 저리 나대는데 우리 남자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요? 남자가 잉태하면 안될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