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제도가 중소기업, 소상공인 다 죽이고 일자리를 없앤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마다, 각종 인증, 허가, 등록, 신고해야 한다. 정말 죽을 노릇이다. 영업허가, 영업등록, 영업신고, 안전, 환경, 보건, 품질, 에너지, 신기술/NeT, 신제품/NeP, 소프트웨어, 서비스/디자인, 단체인증, 조달청등록인증, 이노비즈, 벤처, SQ, KC, 해썹(HACCP), 우수건강기능식품(GMP), GAP, 친환경/유기, 할랄, 비건, 코셔, ISO, FSSC, IATF, 클린사업장, 사회적기업, 유망중소기업 등등 수많은 강제, 법정, 민간, 임의 인증제도 들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은 기업이 하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다 원료수불부, 생산일지, 판매대장작성, 품목제조보고, 자가품질검사, 유효성평가실험, 건강진단, 위생교육, 실적보고, 자체평가, 영업자 준수사항 등등 쓸데없는 일 하다 세월 다 간다. 일만 열심히 하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강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며 행복하게 봉사하며 오래 살 수 있다. 정부/지자체가 규제/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신동식 수출 한국의 길을 열다] ① 서른세 살 초대 경제수석 한국전쟁의 폐허에 갇혀 있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으로 일어서기까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일등공신들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조선입국 의지를 실천에 옮겨 한국을 세계 제1의 조선 국가로 만든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KOMAC) 회장도 그 반열에 들 인물이다. 신 회장에게는 ‘조선업의 아버지’란 수식어 외에도 국가건설기획자 (nation building architect) 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대 경제수석에 임명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하고, 과학기술 발전 계획을 수립 집행하여 한국기술연구원(KIST) 설립과 대덕연구단지 조성 등 경제발전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한국 경제사의 산 증인을 인터뷰해 묻혔거나 잊힌 비화를 발굴하고 교훈을 탐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92세인 지금까지 경영 일선을 지키며 새로운 기술과 미래 먹거리 창출에 도전하고 있는 현역 최고령 조선인 신동식 회장의 구술사로 첫회를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지 않소. 바다에서 살 길을 찾아야지요. 고기를 잡든
미래인증건강신문 나종민 기자 | 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서유구 선생은 또한 조부이신 보만재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친 서호수로 이어져 온 실용지학의 집대성이라는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북학파와의 교류를 통해 체득한 이용후생의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임원경제지]라는 동양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우리 시대에 남겨놓았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은 조선 최대의 명문가였음에도 민생과 실용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에서 검박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서유구 선생이 소년과 청년 시절 교류하였던 사람들은 탄소 유금,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 훗날 북학파로 알려진 개혁 사상가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정조의 핵심 측근으로 정조와 함께 조선 개혁의 꿈을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른 넷 젊은 나이에 정조에 의해 전라도 순창군수로 임명되면서, 당시 백성의 고단한 현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본격적으로 조선 농업 현실을 생산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 선생은 1764(영조 40)년 11월 10일 아버지 서호수와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나, 1845(헌종 11)년 향년 82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삶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까지 평가 받을 정도로 정점에 달했던 영·정조 시절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순조, 헌종 대에 이르기까지 오직 농업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생활문화의 제도화 표준화를 통한 민생의 개선에 바쳐졌습니다. 서유구 선생은 또한 조부이신 보만재 서명응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친 서호수로 이어져 온 실용지학의 집대성이라는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북학파와의 교류를 통해 체득한 이용후생의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임원경제지]라는 동양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우리 시대에 남겨놓았습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은 조선 최대의 명문가였음에도 민생과 실용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에서 검박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서유구 선생이 소년과 청년 시절 교류하였던 사람들은 탄소 유금,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 훗날 북학파로 알려진 개혁 사상가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미래인증건강신문 유덕상 기자 | [삶과 추억] 쌍용그룹 한때 재계 6위 이끈 경영인 중앙일보 고석현 기자 보이스카우트기를 전달받고 있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오른쪽). [연합뉴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78세. 27일 김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는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빈소엔 김 전 회장 재임 당시 쌍용그룹 계열사 임원진과 그룹 원로가 찾아 고인을 기렸다. 재계에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국제빙상경기연맹 회장) 부부 등이 이날 조문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정대철 전 의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빈소를 찾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재계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박진 외교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정치·문화·체육계 인사가 보낸 근조 화환과 근조기가 빈소 앞을 메웠다. 스웨덴 국왕의 조화도 있었는데, 고인의 측근은 “김 전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1801년(순조 1년)은 다산에게 혹독한 해였다. 정조 승하 후 고향집 마현(마재마을, 남양주시 능내리)으로 돌아온 다산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노론의 모함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1월 28일 한양으로 가 머문다. 예상대로 2월 7일 조정에서 탄핵 논의가 일어나고, 이튿날 새벽에 다산은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2월 28일 경상도 장기현, 지금의 경북 포항으로 유배 갔다가 7개월 여 만에 천주교 신자이자 다산의 조카사위 황사영이 쓴 백서 사건에 연루되면서 다시 한양으로 압송된다. 이후 한양에서 800리나 떨어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다. ‘신유옥사’와 ‘신유박해’가 일어난 해 다산의 이야기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다산이오’의 저자이자 다산을 연구하는 문학박사 김형섭 남양주시다산정약용팀장은 “여러 기록과 정황상 다산은 그해 참담한 심경으로 한강을 최소 네 번 건넜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께에서 나고 자란 다산에게 물길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문이었다. 그중 ‘습수(濕水)’라 부른 남한강은 기나 긴 유배길에 오르며 이별의 회한을 시로 풀어낸 물길이자 해배(귀양에서 돌아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신동식. 1932년생.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졸업.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비서관, 초대 경제수석 비서관,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은탑산업훈장, 대통령 표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해사기술 회장, 카본코리아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김형섭 팀장은 “해배 후 다시 되짚어 간 남한강은 이별시를 남겼던 유배길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정서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마치 생(生)과 다시 재회한 사람처럼 ‘귀전시초’에는 지나치며 본 파사성이나 신륵사도 자신만의 애정 어린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해 놓았다”고 말했다. 다산의 남한강 기행은 몇 년 뒤 이어진 북한강 기행까지 아우르며 인문 역사지리서 ‘아방강역고’에 ‘한강 물길’의 방점을 찍는 이정표가 된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맹반발에 부딪혔다. 담당 부처와 한국은행, 기업들은 물론 정치권에서 “가능성 없는 탁상공론이다, 제 정신이냐, 대통령을 현혹하지 말라”는 등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신 회장은 ‘세계 조선공업 변천과 한국 조선공업의 좌표 설정’이라는 한 장짜리 도표를 들고 박 대통령을 다시 찾았다. 세계 경제가 발전할수록 해운 물동량이 늘고, 그만큼 일본과 유럽의 조선 능력을 초과하는 수요가 발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신 회장은 “수많은 사람이 사사건건 반대하고 간섭하는 것에 굴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해주면 이 한 몸 불살라 우리나라 조선을 일으켜보겠다”고 호소했다. 그를 ‘신 국보’라 부르며 아꼈던 박 대통령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결실이 조선·해운·수산·항만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인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창설이었다. 대통령이 9월 25일 검토 지시를 내린지 2주만에 정식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위원회의 첫 개가는 대만에 참치 어선 20척을 수출한 것이다. 신 회장은 67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경제 협력자금 614만달러를 대만에 지원해 국제입찰로 어선을 건조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다산은 시 ‘탄금대를 지나며’를 통해 탄금대 ‘열두대’ 절벽 부근에서 투신 자결한 “신립 장군을 일으켜 얘기나 좀 해봤으면” 한다. 신립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탄금대 부근에서 적군과 대결하다가 참패를 당하고 강물에 투신한 인물. 다산은 시에서 목숨 바쳐 싸우다 죽은 8000군을 애도하며 수장 신립을 향해 “조나라였으면서 한나라 전술을 따라 해 대패했다”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다산의 비판이 무색하게 탄금대 유적지엔 끝까지 왜군과 맞서 싸운 ‘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충혼탑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져있다. 신립 장군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절벽에 있는 바위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열두대는 남한강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다. 신립 장군의 전술에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열두대 아래 강은 그저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이다. ◇'막희나루’를 찾아서 하담 모현정과 탄금대 사이 ‘목계나루’ 부근에 남아 전해지는 ‘막흐레기’라는 지명은 다산이 ‘막희나루[莫喜樂灘]’라 명명한 곳. 김 팀장은 “‘여울이 심해 물이 막 흐른다’는 뜻으로 마을 주민들이
미래인증건강신문 유영준 기자 |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월급을 받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